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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의 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어쩐지 시 쓰는 것이 좋았습니다.
나는 꽃이 피고 지고 나무가 열렸다 접히는 것에 시선을 기울이고는 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채 마음속에 장면 담아두는 것이 소중한 줄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시를 쓴 건 중학교 백일장이었나 봅니다. 유년 시절에 살던 집 앞에 커다란 라일락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향기에 대한 기억을 무어라 적고 만족이랄지 뿌듯함이 마음에 차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시가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담을 만한 도구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인 김영랑을 좋아하던 때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 나는 시 창작 동아리에 들었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면서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는 좋은 자녀가 되겠다는 불가능한 꿈을 키웠습니다. 그뿐인가요. 학교 밖에 나가면 하고 싶은 일이 널렸고,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 살았습니다. 그때의 시를 들여다보면 ‘하겠다,’ ‘해야겠다’는 다짐의 일색입니다. 기억을 되새기고 청사진을 그리는 용도로 시를 끼적이곤 했습니다. 시인 이육사와 고은을 좋아하던 때였습니다.
나는 얼마 전에야 처음으로 세상의 현관에 서게 된 느낌입니다. 초인종을 울리며 초인종이 열리기를 기대하는 미숙함과 조급함에 치이고 치였습니다. 그러면서 눈앞이 새까매질 때 시를 썼습니다. 바닥까지 무너져 내렸다가 기는 법부터 배워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시절이 쌓여 문학동인 <월간 D.A>에 시를 내보인 지 벌써 1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그동안 모인 시 중에 열다섯 편을 골라서 부지런히 다듬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관찰자의 성질을 타고났습니다. 말없이 무엇 하나를 두고 곰곰이 살피기를 좋아하는 나입니다. 그렇기에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변화하는 것이고 늘 미완의 성질을 띱니다. 이 시집은 온통 핏덩이 같이 약하고 위태로운 나에 대한 관찰입니다. 정해진 답 없는 질문을 던지는 자체가 고민이고 통찰이라고 믿으며 적었습니다. 내게서 무어가 자라려고 그러나, 함께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시간을 보내는 일은 참 고단합니다. 시집을 내려고 굳이 서두른 이유는 버거웠던 지난 일 년여를 기념하기 위해서일까요. 격려해주시고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시에 꼭 어울리는 삽화를 그려주신 박현 작가님, 그리고 도넛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더 치열하게 쓰겠습니다. 꽃이 피는 계절에 책으로 만나뵐게요.
2017년 2월 22일 연영 드림.
2. 서평: 김진이, 연蓮 씨앗의 무게
시인이든 화가든 창작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외부에 떠다니는 잔여물을 잡아 종이에 녹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연영의 글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짓이겨지다 못해 넘쳐 나온 진물이나 겨우내 참다가 겨우 터뜨린 숨 같아서. 오랜만에 구절마다 멈추어가며 “생의 무게”를 가늠해보는 독서를 했습니다. 연영의 여며진 불완전함을 곱씹고, 지난했을 하루하루를 떠올리면서 짧은 서평을 적습니다.
시집은 전반적으로 일상의 아픔을 다루고 있습니다. 일상과 아픔이 한자리에 나란히 놓여있다는 것부터 서글픈 일입니다. 시집의 시작점인 1부에서는 화자의 내부를 갉아먹는 고통이 차츰차츰 드러납니다. 그리고 고통에 대한 표현은 「숲」에서부터 본격적인 궤도에 오릅니다. 화자는 “고통과 성취”를 함께 기도합니다. 이 모순적인 기도는 “지문 사이에도 칼날을 숨겨놓았”기 때문에 성립됩니다. 기도는 손을 맞대는 일이니, 지문에 숨겨진 칼날은 자신에게 향합니다. 빼곡한 침엽수림의 이미지는 이내 첨예한 칼날로 치환됩니다.
그 다음 「독」에서 화자는 “오직 약하고 해 끼치지 못하는 것만이 독을 품는다”며 자신이 약한 존재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독’이라는 시어는 1부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작은 우화」에서는 삼킨 눈물이 독이 되었음을 담담하게 밝힙니다. 그리고 눈물을 먹고 자란 독은 병이 됩니다.
속에 뭐가 썩었나 보다
도려낼 수가 없다
도려낼 수가.
- 「식중독」 일부
자신이 흘리는 눈물을, 자기 자신이 삼켜서, 자신의 병이 되는 것만큼 자기혐오가 심해지는 때가 있을까요. 이전에 도려내는 것은 외려 외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글을 적은 적이 있었지만, 도려내기에는 너무 커졌다면 혹은 도려낼 힘조차 없어졌다면, 얼마나 깊게 침잠하게 될까요. 약해서 독을 품었다 생각하는 화자는 “짐승에게 겁”을 주고, “여린 목숨을 탐”하며 연명합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해 자학하며 다시 자신이 약해서, 독을 품어 그렇다는 비관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2부에서부터 화자는 조금씩 달라집니다. 2부의 첫 시 「시작詩作의 기술」에서 화자는 “나는 슬픔 속에서도 우연히 맑아질 줄을 알아서”라고 내심 자랑하듯 평온을 고백합니다. 1부의 독이 맑아지기까지, “사람은 파도처럼 살아진다”며 지금까지의 아픔을 살아가며 겪는 굴곡으로 치부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사이의 무수한 순간들을, 연영이 되뇌었을 무수한 독백을 2부의 여백에 멈추어 서서 상상했습니다. “어느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지” 잘 모르겠던 아이가 이제는 “파란 불이 들어오면/ 발목을 묶어둔 소음을 풀고” 건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경위에는 “괜찮다. 괜찮다” 말해주는 화자 자신의 목소리가 있었고, 3부에 드러나는 또 다른 존재가 있었습니다.
열리지 않는 초인종이었던 존재가 화자의 가장 깊은 이가 되어갑니다. 그를 향해서 이전의 자신은 “새파란 가지”였다고 말하지만, 화자가 「봄꽃 시」에서 말했듯이 “자목련이 피기까지 가지는 야위어야” 합니다. 자신의 “왕궁”에서 도망친 화자는 혼자에서 둘이 됨으로서 “우리의 마을”이라는 새로운 안식처를 갖게 됩니다. 아침을 기다리는 새벽이 가장 추운 것처럼, 새로운 희망을 알아갑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나는 연꽃과 같습니다.
앞서 생의 무게를 가늠하며 읽었다 밝혔지만, 결국 쉬이 어림잡아 헤아릴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연영이라는 사람을 익히면서도 멀어진 기분입니다. 단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글이라는 사실입니다.
남몰래 사랑했던 시 한 구절을 읊으면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 햇빛 아래 엎드려 있으면
네가 내 머리칼을 가르고 입을 맞추었다
내가 깨어진 조각은 도시의 뒷골목에 흩어져
아침이면 늘 눈이 부시다
- 「너를 위하는 시」 일부
화자가 “우리의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흩뿌리고, 또 가끔은 주워 담았을 조각들이 빛납니다. 그 작은 조각들을 놓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시집이었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깨진 것들은 때론 누군가를 다치게 합니다. 아스라하게 매달려 있는 씨앗이 깨어져 나오면 또다시 아플 수밖에 없을까 염려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경건하고 아린 첫 시집을 축하하며, 활짝 피어난 연꽃을 기대해 봅니다.
3. 감사 인사
감사 인사가 늦었습니다.
79분께서 시집 <초인종은 열리지 않는다>를 후원해주셨습니다. 서점 22곳에서 입고를 허락해주셨습니다.
진솔하게 쓰는 것이 전부라고 믿었습니다. 스스로 부족한 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께서 책에 담긴 이야기를 궁금해 하시더라고요. 기쁘다기보다는 의아했습니다. 등단도 안 한 작가의, 문학성도 뛰어나지 않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을 사람들은 왜 읽는 걸까. 아는 사람들과 몇 권 나누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나는 300권이나 뽑게 된 걸까.
학교 근처 서점에 입고를 부탁드리면서 책을 보여드리는데, 서점 아저씨가 꼭 한 마디 하셨습니다. “글은 눈에 잘 안 들어오는데... 매력 있네.” 그 때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좋은 책이라고는 말할 수 없어도, 누군가의 마음을 잡아끄는 책이 되었구나. 스물한 살 난 여자애의 가장 솔직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풋풋하게, 아프게 읽어주시는구나. 초인종이 몇 백 개의 책장에 꽂혀 때마다 누구의 치열함이 되고, 다정함이 되고... 그런 생각을 하면 부끄러움 위로 고마운 마음이 차오릅니다.
추측이지만 저는 글을 오래 쓸 것 같습니다. 긴 여정에 이제 작은 언덕 하나를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기를 넘어 문학으로 가는 길이라면 좋겠습니다. 곁에서 함께해주어 고맙습니다.
2017년 4월 3일 연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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